분절된 하루를 사는 법: 프로비질, 그리고 ‘정상’에 대한 물음
기면증 1형이라는 진단을 받은 뒤, 내 삶은 ‘지속적인 시간’의 흐름에서 ‘분절된 시간’의 흐름으로 바뀌었다.
사회의 모든 시스템은 24시간을 하나로 잇는 선형적인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아침 9시에 시작해 저녁 6시에 끝나는 업무, 연속된 미팅, 쉼 없이 이어지는 창작의 흐름. 하지만 나의 뇌는 그 규칙을 따르지 않는다. 나는 하루를 강제로 두 개, 혹은 세 개의 파편으로 쪼개야만 비로소 일상을 영위할 수 있는 ‘분절된 삶’의 당사자다.
범용의 약, 그리고 내 몸의 불협화음
기면증을 처음 진단받았을 때, 의사는 가장 먼저 프로비질(성분명: 모다피닐)을 처방했다. 기면증 환자들에게는 가장 보편적인, 사실상 표준에 가까운 선택지다. 이 약은 기면증뿐만 아니라, 교대 근무 수면 장애, 심지어는 우울증의 보조 치료제로도 널리 쓰인다.
하지만 바로 그 ‘범용성’이 내게는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다. “모두에게 처방되는 이 약이, 과연 내 뇌가 겪고 있는 아주 특수하고 깊은 결핍을 채워줄 수 있는가?”
내 대답은 “아니오”였다. 프로비질을 복용했을 때 내게 찾아온 것은 각성보다는 ‘감정의 소용돌이’였다. 우울증 치료에도 쓰이는 약이라더니, 역설적이게도 나는 이 약을 먹고 난 뒤 예전엔 없던 감정 기복과 우울감을 경험했다. 마치 감정의 낙차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듯한 느낌. 창작자로서 가장 경계해야 할 ‘감각의 둔화’와 ‘인위적인 불안’이 나를 덮쳤다.
프로비질을 먹어도 결국 낮잠은 필수로 자야 했다. 약을 먹으나 안 먹으나 낮잠을 자야 한다면, 약을 먹음으로써 겪어야 하는 부작용은 무엇을 위한 대가였을까.
‘약물’ 대신 ‘데이터’를 선택하다
그래서 나는 결단했다. 의학적 표준이라는 틀에서 한 발짝 물러나, 나만의 생체 데이터를 따르기로.
나는 현재 약물 대신 전략적인 낮잠과 카페인(에너지 드링크/커피)의 조합으로 하루를 운영한다. 약 1시간 내외의 낮잠을 ‘시스템 재부팅’의 시간으로 삼고, 카페인으로 부족한 각성을 보조한다.
누군가는 위험하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건 근본적인 치료가 아니야”, “심장에 무리가 가잖아”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약물을 먹고 우울감에 빠져 작업실에 멍하니 앉아있는 것보다, 카페인을 마시고 내 손으로 직접 믹싱을 하고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현재의 방식이 내게는 훨씬 더 ‘정상적인 인간의 삶’에 가깝다.
약물은 내 뇌를 ‘규격화된 노동력’으로 치환하려 하지만, 나의 자가 관리는 내 뇌가 가진 고유한 리듬을 어떻게든 ‘창작의 도구’로 활용해보려는 시도다. 나는 환자로서 살기보다, 내 뇌의 관리자로서 살기를 택했다.
사회적 성공의 불리한 조건: ‘표준’의 폭력성
하지만 이 선택이 자유로운 것만은 아니다. 기면증 환자가 겪는 진짜 비극은 졸음 그 자체가 아니다. 이 사회가 규정한 ‘연속적인 시간 체계’에서 배제된다는 사실이다.
오랜 시간 이어지는 외부 활동, 쉼 없이 연결되어야 하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하루를 쪼개어 낮잠을 자야 하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비효율적인 존재’로 낙인찍힌다. 이것은 개인이 극복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사회적 장애다.
많은 기면증 환자들이 사회적 성공에서 멀어지는 이유는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연속적으로 깨어 있을 수 있는 사람’만을 유일한 표준 노동자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낮잠을 자야만 하루를 이어갈 수 있는 사람에게, 낮잠 시간은 게으름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재부팅이다.”
이런 분절된 삶을 사는 이들을 위한 제도적 안전장치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왜 일반인과 똑같은 ‘연속적인 노동 시간’을 강요받아야 하는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약으로 강제된 정상성’이 아니라, ‘다양한 수면 패턴을 인정하는 사회적 유연성’이다.
글을 마치며: 왜 기록을 시작하는가
나는 이 고민들을 단순히 혼자만의 투정으로 남기지 않으려 한다.
약물 치료의 한계, 범용적인 처방이 가진 맹점, 그리고 기면증 환자가 일상에서 겪는 사회적 불이익에 대해 더 깊이 파고들어 보려 한다. 그것이 내가 블로그에, 그리고 어쩌면 더 큰 책으로 이 이야기를 써 내려가려는 이유다.
나와 같은, 혹은 비슷한 시간을 파편화해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이 글이 닿기를 바란다. 우리가 겪는 이 ‘분절된 삶’이 결코 불완전한 것이 아니라, 그저 다른 리듬일 뿐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리듬을 지키기 위해 우리가 치러야 하는 대가가 너무 가혹하지 않은 세상이 오기를.
혹시 같은 고민을 하는 분들이 계신가요? 혹은, 표준적인 치료법이 내 삶의 질을 오히려 떨어뜨린다고 느꼈던 분들이 계신가요?
여러분의 이야기도 댓글로 들려주세요.
(주의: 이 글은 의학적 처방이나 권고가 아니며,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한 투병 기록입니다. 약물 조절이나 치료 방법은 반드시 전문의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